우리들의 종묘에 대한 기록과 대화 
[photo by 꽃이피다]
[우영이형의 기록]
종묘
하늘과 땅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공간도 베어지는구나.
이번엔 그랬다. 침묵의 지붕선과 끝없는 박석의 평원 사이로 칼끝이 지나갔다. 순간, 이렇게 공간도 베어지는구나 생각했다.
트레이싱지 위의 지우개똥을 바라보다가
혹은 그날의 스케치가 터무니 없던 때도
숱하게 종묘 정전의 윌대를 걸었다
종묘의 풍경은 매번 처음인듯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마다 수직으로 그어진 19칸 조선의 왕들은
촉록의 이파리처럼 흔들리고 다시 살아났다.
그렇게 수직의 선들을 밤새 따라 그리며
지긋한 시간을 버티고 또 걸었다. 하지만
한번도 이처럼 베어지는 공간을 보진 못했다.
공간의 경험은 언제나 단면의 크기로
결정된다 믿었다.
미메시스의 둥근 천창으로 쏟아지는 햇살도,
벽면 가득한 책들로 뒤덮힌 지혜의 숲도
모두 단면의 크기와 함께 감동이 왔다.
수평으로 그어지는 평면의 크기를 처음 보았다.
100미터가 넘는 지붕평면도는 얼마나 지루한 도면이겠는가. 그 지루함이 삶과 죽음, 하늘과 땅의 경계를 만들고 있다. 그 베어지는 공간을 이제야 보고 있다.
이 경험을 기록하고 나눌수 있어 좋다.
종묘를 걸었던 두시간의 기억이 모두에게
특별하고 또 지극히 개인적이길 바란다.
개인적인 감동이 결국 왕들의 시간을 다독일테니.
[꽃이피다]
때때로 눈 보다 렌즈에 비친 사물이 더 멋질때가 있는데 종묘는 정말 눈에 보이는 것의 1/10도 표현이 안되네요.
감히 신의 공간을 한갖 핸폰렌즈에 담으려 하느냐 하는 듯 했어요.
오늘도 좋은 시간 만들어 주신 우영이형과 꿀친들께 감사드려요~~

(…)
유월 첫날이예요~
어제 @소나무 김성신
소나무님이 주신 딸기잼을 아침에 먹었는데 딸기향이 은은하게 퍼지면서 어릴적 엄마가 해주시던 딸기잼이 생각났어요.
하우스 딸기와는 정말 다르네요.
땅의 기운과 햇빛, 바람이 키운 노지 딸기로 만든 딸기잼은 요즘 나오는 빨갛고 달기만 한 잼과는 정말 달랐어요.
소나무님 잘 도착하셨지요?
새벽기차 타고 오시면서 무겁게 가득 들고 와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린 곧! 뵈어요~~
[아녜스]
잔잔과 소나무는 벌써 여러번 와봤다고 했는데, 그 고요함에 대하여, 그 쓸어내림에 대하여 나눠주었는데 세상에. 나는 종묘도 처음 와봤다. 남의 나라 고궁이나 유적지는 그렇게도 가서 감탄을 했으면서 종묘가 주는 충격적인 차분함과 이 낮고 분명한 웅장함에 대하여, 500년 동안 증축되며 지속적으로 지어져온 그 마음과 뜻에 관하여 한번도 들어본 적도, 알려고 해본 적도 없었다.
잔잔이 표현했던 “어른들의 소풍”이 그 많은 인파에도 불구하고 고요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종묘에서 있었다. 아마 잠시 떨어져서 그 오래된 시간을 걷고 있는 우영이형의 모습이나, 감탄사, 함께 한 사람들의 시선이 없었다면 나는 또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본 것은 무엇일까”
미메시스 미술관에서 또 이어진 우영이형의 질문에 나는 아직 답을 할 수가 없다. 더 찬찬히 더 자세히 더 오래 더 여러번 보아야 한다. 아리누리가 왔더라면 그는 말해주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번 종묘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삶과 죽음의 경계까지는 보지 못했지만 ‘존재함’. “여기 있었다, 여기 묻혔다, 여기 기록했다”가 아니라 ‘존재함’. 꽉 채워진 여백. 그리고 친구들과 다시 오고 싶은 마음.
여튼 우리는 블루베리 와인과 감자전, 케일쌈밥을 흡입하고 ㅎㅎ
소나무와 블루비 찬스로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공간인줄도 모르고 네이버맵에 표시해두었던 카페겸 가죽공방 ‘수수’에서 리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장인이 내려주시는 예술 커피와 함께.
우리들의 종묘 리뷰 (클로바로 녹음한 내용이에요)
[잔잔]
뭔가 소풍 온 기분이어서 좋았는데 거기에 이런 건축학적인 얘기를 들으면서 하니까 확실히 더 의미가 있었고,
죽은 자와 산 자의 그것을 구분하고 그런 구분자를 위한 공간을 더욱 이렇게 했다는 것이 참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사는 삶만 볼 수 있는데 보이지 않는 그들의 세계까지 존중했다는 건 어쩌면 삶처럼 죽음도 크게 중요시한 거잖아요.그래서 그런 게 되게 지혜롭다, 그런 만든 방식이나 이런 디테일도 그렇고 원래 사람들은 역시 똑똑했구나, 요즘 사람들은 헛똑똑이지만 이러면서 
[꽃이피다] 해외에도 이런 공간이 있나요?
[우영이형] 유일한 유일한 공간이고 그러니까 묘지는 많이 있지. 죽은자들을 위해서 기념할 수 있는 공간들이 많이 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 왕조가 끝나는 500년 동안 계속해서 죽은 자들을 위해서 증축하면서 기리는 공간은 없죠.
[꽃이피다] 사직단이라는 게 지역마다 있잖아요. 근데 그걸 일본이 다 없애버렸다 하더라고요. 우리나라의 전기나 맥을 끊기 위해서 그런 걸 다 없앴다고 하더라고요. (임진왜란 때 거의 다 없어졌고 그다음에 이제 복원한 것이 일제 강점기 때 싹 다 없어지고.)
[소나무] 이런 게 교과서든 아니면 방송을 통해서 매체를 통해서, 종묘나 사직단 같은 게 좀 의미가 잘 전달이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의미를 알면 훨씬 더 친근하게 느끼고 더 가보고 싶고 자꾸 알면 더 잘 보이잖아요.그런 부분들이 함께 반영이 돼야 되고요.
나도 종묘에 그 배병우의 사진을 보고 왔던 것 같아요.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뭔가 장엄하고 장중하고 막 이런 위엄이 있고 그런 게 아니라 곧 내게도 닥칠 일이니까. 그래서 약간 마음 편하게 가볍게 본 것 같아요. 그리고 경계라는 게 사실 이렇게 명확하게 있지 않는 것이 삶이 아닌가. 그렇지 않을까요? 내일을 모르잖아.
“강한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것이 삶이다.”
[꽃이피다] 나는 실은 오늘 일부러 블랙을 입고 왔어.
그러니까 우리가 제를 지내잖아, 미신이 아니라 약간 이 형식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때로는 우리가 형식을 따라갈 때도 있잖아요. 형식이 주는 힘 같은 게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궁금했었어요. 솔직히 종묘, 뭔가 종로 4가, 5가는 그렇게 좋은 이미지가 솔직히 없었어요.그래서 종묘를 말씀하실 때 그 가치를 잘 몰랐던 거죠. 굉장히 궁금했는데 와서 보니까,
이런 유산이 남아 있는 게 너무 감사했고 그걸 우리가 후대에 볼 수 있는 게 참 고맙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서울에서 이렇게 숨 쉴 수 있는 공간. 저는 계속 서울을 이렇게 다니면서 서울이 보여주는 (그 성북동 도서관도 그랬고), 복잡하고 도시 소음, 인구밀도 높은 서울이 아니라 이렇게 서울에 좋은 곳이 많구나 느끼기 시작했고 앞으로 점점 더 뭔가 무게감 같은 게 느껴지겠죠.
[우영이형] 해외에 있는 이런 공간들을 가보지 못했지만, 90, 90 넘은 건축가들이 해외에 있는 죽은 자들의 공간을 디자인을 했거든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고 다 나이 들어서 묘지 공원이든 뭐든 디자인을 하기를 바라는 이유가 있는 것 같은 것 같아요. 사실은 말씀하신대로 이게 죽음에 대한 게 좀 받아들여져야지 그게 디자인이 되지 않을까 해요.
[지니] 저는 뭘 그렇게 깊게 생각을 안 하는데, 5월에 친정 어머님이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조금 더 마음이 약간 더 그랬어요. 친정 아버님이 두 분이 사이가 너무 좋으신 그러니까 그거를 못 견디시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님이 맨날 놀이터처럼 쓰시는 방에다가 추모관을 만들어놓으셨어요. 맨날 향 피우시고 그런 활동을 매일 하면서 :) 아침 드시고 엄마 좀 보고 올게, 엄마는 식사 잘하셨나 봐야 되겠다고, 근데 이제 그런 마음이 여기 있지 않았을까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여기도 있어서 그 공간을 우리가 지금도 같이 느끼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우영이형] 그러니까 순서가, 3년상 끝나고 나서 여기다 모시고 그다음에 더 중요한 게 3년이 아니라, 30년쯤 후에 40년쯤 후에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하는 거죠. 이분이 조선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가 평가를 해서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라고 후세에 평가가 되면 그대로 계속해서 모시고 안 그렇다면 이제 영녕전으로 빠질 수도 (웃음)
그러니까 저 정도 건물의 느낌이 살아 있는 게 사실은 전 세계에도 없으니까요. 외국 건축물들은, 신에 대한 건축물은 다 하늘로 올라가 있는 건축물이에요. 파르테논 신전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 다 높잖아요. 무조건 하늘로 솟아 있는 건물이고, 어쨌든 위에 신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그쪽으로 다다르려고 하는 건물들, 묘지도 그렇고 성당도 그렇고 교회도 그렇고요. 근데 우리나라는 그쪽하고 완전히 다른 거죠.
[아녜스] 다시 다른 계절에 와보고 싶다, 좀 조용할 때. 그런 생각은 들었고 외국에서 엄청난 규모의 이런 것들을 보면서 막 감탄을 했었는데, 사실은 너무 다른 이 스토리, 오늘 종묘를 마구 이렇게 느끼고 있었다는 사람들이랑 같이 오니까,
게다가 우영이형이 프로그램에서 가자고 하는 건물에 가면 본인이 여러 번 왔는데도 항상 감탄을 하잖아요 :) 아 좋다 , 이게 되게 진실되게 느껴지긴 하는데 오늘은 너무 그걸 혼자 더욱 느끼고, 심지어 저쪽 가서 혼자 걷기도 하고. 이런 걸 보니까 나도 약간 더 다르게 젖어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소나무도 잔잔도 눈에 오면, 또 엄청 비 올 때도 너무 좋아요 이런 감탄사들 속에서.
[우영이형] 그러니까 건축과 학생들도 마찬가지지만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모든 자료는 인터넷에 다 나와 있어요. 책에 다 나와 있고 한 글자도 빠짐없이. 그러니까 건물들을 보는데, 사실은 보는 모든 사람들이 여러 번 와서 오랫동안 보면 자기가 느끼는 게 따로 있어요. 책에 나오지 않는 것을. 오랫동안 혼자 와봐야죠.
건물이 이쁘고 새롭고 공간도 특이하고 또 느끼는 감동도 분명히 있고 한데, 그거 말고 그냥 자기만이 볼 수 있는 뭔가가 있거든. 한 번 봐서 잘 모르고 나도 잘 몰랐고, 여러 번 가서 보고 느끼고 하면 여러 가지가 연결이 되는 거에요.
[아녜스] 세상에 이제 정보가 너무 많을 뿐만 아니라 이제 찾을 필요도 없이 나랑 다 연결이 이미 돼 있기 때문에 그냥 뭐 누르고 내가 뭐 보고 있어도 되고, 건물도 AI가 시험보면 더 잘 볼 수 있지만, 자기 것으로 느끼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더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우영이형] 그러니까 건축하는 사람들이 여기 오면 대부분 공통적인 얘기를 똑같이 하죠. 내가 이거 그린다고 **하는게 별거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지. 일하다가 그래 좀 편하게 하자, 이런 생각도 들고.
다음 번에 인천에 있는 근대 건축을 볼까는 싶은데, 정동과 달리 인천 거기는 배가 들어와서 거기서 하루 머물고 있다가 한양으로 가야 되니까 사람들이 막 쓰는 건축물들인 거지. 사실은 쉽게 얘기해서 러시아, 일본 여러 군데가 짬뽕 돼 있는 근대 건축물들이거든. 그게 완전히 달라요. 완전히 다른데 거기를 한 바퀴 보고 짜장면이나 먹고 올까 생각하고 있어요 :)
-대화 끝-
그리고 우리는 눈이 내리는 날, 다시 눈내리는 종묘에서 번개를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만약 올겨울 어느날 밤새 눈이 내리면 예고없이 번개 합시다 ^^ 새벽종묘 건축학교!!!”
“지난 1월초 밤새 눈내렸단 소식을 듣고 후다닥 달려갔죠 영녕전과 공사중인 정전! (신호위반 딱지가 남긴 했어도 ^^) 올 겨울엔 정전 앞 월대를 덮은 그 장면을 보러 갑니다.”
[소나무]
이번 종묘에선 예전의 뚜렷하게 다가왔던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냥 안개길 처럼 걷혔다 뿌였다 또 뿌였다가 걷혔다가 그리 보이더라구요..
동전이 갖고 있는 앞뒷면처럼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이번 종묘는 나에게
삶과 죽음의 구별이 없어
산자와 죽은자가 서로 배려하며 만나는 공간으로 왔던것 같아요
그런데 현실로 오니
또 역시 경계는 있더라구요(안도)
종묘를 다녀와서 아주 오랜만 몇년만에 며칠을 심하게 몸살을 앓고 아네스의 후기를 보니 또 새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