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은 건축주

성북 오동 숲속 도서관

날짜
2025/05/03
활동
댄비건축학교
오동숲속도서관
작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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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건축학교는 많이 바빴습니다 0. 10시까지 성북구민체육관 집결 1.10시부터 11시반 숲속도서관 2. 12시까지 북촌한옥마을로 이동 3. 12시반부터 1시간 조선김밥에서 점심 4. 1시반부터 2시반까지 백인제가옥 탐방(김밥집서 걸어10분) 5. 3시부터 윤보선고택 살롱음악회 ^^
[아녜스 후기]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이른 아침, 초록초록 물방울 가득 머금은 숲을 지나
숲과 하나되어 지붕만 빼꼼히 보이는 숲속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신이 났다.
비가 와서 다행이라며.
보슬보슬 살곰살곰 내리는 빗속을 지나며 재잘재잘
우리는 또 어린아이가 되는 마법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오늘의 건축물로 직진하지 않고 둘러둘러 천천히 다다랐다. 작은 숲속 도서관을 발견하기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빗속의 작은 도서관은 따뜻하고 아늑했다.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회랑에서 잠시 걸어온 숲을 바라보며 이미 힐링. 내부로 들어가니 빛은 온통 밝고 내부의 천장은 높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두가지였다. 숲을 바라보고 있는 아늑한 1인용 의자들, 얼른 가서 앉아보고 싶은 곳, 앉아보니 서둘러 일어나기 싫은 Spot. 두번째는 빛바랜 책들이었다. 빛은 창문 높은 곳에서부터 막힘없이 내부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영이형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러네, 보통은 책장을 벽쪽에 배치하고 빛이 책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우리의 동선을 따라 책장들이 줄지어 구역을 나누고, 햇볕도 온몸으로 받고 있었다. 뭐 어떤가. 겉표지 컬러쯤이야. 텍스트는 다 무사하니.
한쪽에는 작은 카페도 있었다. 거기서 책을 보는 아이들은 아지트에 들어가 앉아있는 모양이었고 큰글씨 앞에 앉아있던 어르신들은 오늘도 왠지 집으로 출근하신 것 같이 편안해보였다. 이런 숲과 이런 도서관을 누리는 주민들이라니. 지니가 사준 생강차를 마시며 잠시 책을 골라 10분이라도 체험하겠다며 쇼파에 앉아도 보았다.
달팽이를 연상하며 설계했다는 아기자기한 지붕의 모양을 우영이형이 보여주었다. 회랑을 제외하면 80평 남짓한 공간은 그렇게 또 세심하게 설계된 것이구나. 그래서 숲속에, 숲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숲과 하나된 쉼터, 빛이 환한 공간, 그래서 숲과 하나가 된 내부, 그 내부와 외부를 연결하는 회랑의 이야기.
나는 이곳을 걷고 느끼며 단양의 달팽이텃밭이 생각났다. 산소리님이 함께 왔지만 블루비, 소나무님과도 꼭 다시 와보고 싶었다. 숲과 쉼과 배움, 조잘조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 이야기가 피어나는 공간이 머릿속에 펼쳐졌다. 숲은 경이롭다.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늘처럼 걷고 쉴 수 있는 구조물과 만날 때 다시 태어난다. 그것이 한 두 사람의 은밀한 전유물이 아니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면, 그 채움과 배움과 나눔은 표현할 길 없이 넓고 깊어질 것이다.
이 도서관에서 한가지 큰 아쉬움은 책의 큐레이션이었다. 책이 카테고리마다 잘 꽂혀있었다.
ㅎㅎ 5분을 앉으려고 겨우 찾은 책 :)
P.S. 숲속도서관 체험이 끝나고 북촌으로 향할 때 조선김밥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가, 비는 개이고 해가 나기 시작했다. 점심은 빠요님이 바톤을 받았는데 역시나 믿고 먹는 빠요 추천 식당. 감탄하며 점심을 먹어치우고,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건축학교답게 우리는 곧바로 백인제 가옥으로 출발 :) 세번째 바톤은 다시 우영이형이 받았다.
이곳은 정말 보너스 코스였다. 백인제 가옥은 단절과 연결이 절묘한 곳이었다. 한 곳에 담기지 않고 한 눈으로 가늠할 수 없는 굽이굽이 동선을 돌면 나타나는 모든 공간이 숨겨진듯 이어지고 발견된듯 새로 시작되었다. 곳곳에 흩어진 정원이 사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고 대청마루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세심하게 디자인된 풍경들. 이곳이 집이라면 어떨까, 저 마루에 앉아있다면 무엇을 할까, 읽을까, 생각할까.
다음은 다시 빠요 차례 :) 마지막 코스는 윤보선 고택에서 예정되었던 살롱 음악회. 빠요의 초대로 건축학교 꿀친들 모두 선물같은 시간을 보냈다. 모든 연주가 놀라웠는데 가장 기억하고 싶은 곡 S. Yuferov : Piano Trio in c minor, Op. 52, 3rd movement 프로그램 잃어버려서 겨우 찾음 :)
선물같은 풀코스를 만들어주신 우영이형, 빠요, 꿀친들, 모두 감사합니다 :) —— [우영이형 후기]
[회랑]에 대한 생각
그날의 연극무대의 관객은 겨우 열두어 명이었다. 무대가 끝나고 관객보다 많은 출연진을 향해 우리는 맨 앞, 일렬로 일어나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30년도 지난 일이지만 그날의 환호 소리는 지금도 생생하다. 회랑을 걸을 때마다 그날 일렬로 선 채 보내던 갈채가 떠오른다. 안과 밖을 연결하는 회랑의 끝에는 적당한 간격의 기둥들이 줄지어 있다. 줄지어 서서 마치 그 사이를 걷는 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회랑은 우리가 아는 발코니와도 닮았지만 다르고 테라스와도 또 다르다. 기둥 덕분이다. 건축물의 바닥면적은 지붕과 기둥, 벽으로 둘러싸인 부분의 면적을 말한다. 발코니와 캐노피는 지붕은 있으나 벽이나 기둥이 없고 테라스는 지붕이 없는 공간이다. 면적에 산입되지 않는 이유이다. 하지만 회랑은 다르다. 물론 3미터 가량은 큰 고민 안하고 기둥 없이도 내외부를 연결하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굳이 기둥을 줄 세워 놓은 데에는 건축가의 고민이 스며 있다.
내게 [오동숲속도서관]의 백미는 회랑이 건네는 이야기다. 회랑에서 바라보는 숲의 풍경은 도서관으로 오르는 길의 그것과 다르며 도서관 안에서 바라보는 것과는 또 다르다. 초록의 품 안에 몸을 맡긴 채 오르는 숲길은 곧 만나게 될 도서관의 마당처럼 우리를 안내한다. 이미 지나온 숲길을 바라보는 회랑의 공간에는 초록의 향이 가득하다. 건축학교에서 오기 2주전쯤 혹시 뭔가 바뀐게 있을까 싶어 오랜만에 도서관을 방문했다. 숲길을 올라왔고 뒷짐 지고 회랑을 걸었다. 줄지어 선 기둥들은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리기도 하고 요란하지 않게 차르륵 박수를 보내주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회랑의 한쪽에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숲해설가 선생님의 이야기에 너도나도 손을 번쩍 들었다. 그날 회랑의 기둥들은 박수보다는 곧 숲으로 튀어나갈 출발점의 경계선 같았다. 가느다란 기둥으로 둘러싸인 회랑의 공간이기에 가능한 풍경이겠구나 생각했다.
모든 공간은 그렇게 그곳을 바라보는 사람의 수 만큼 다양하게 다가온다. 회랑의 공간을 경험할 때면 내 기억의 사람중 그런 사람이 생각났다. 누구에게든 언제나 박수를 보내주던 사람, 그를 만나면 누구든 밥맛이 좋아지고 기운이 났다. 이번 건축학교를 마치며 생각했다. 다들 이렇게 잘 먹어대다니, 서로에게 이렇게 박수를 보내다니. 이들이 회랑의 여러 기둥들이구나 생각했다.
>> 산소리:
회랑의 의미를 새롭게합니다 그 회랑을 거닐었지요 덕분에 산들이 겹겹이 두른 모습의 숲속도서관을 만났습니다
언젠가 그곳에서 만나진 아름다움 정다움을 내안에서도 펼쳐질수 있게 살겠습니다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