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전 올라온 댄비의 편지]
파리에 보내는 편지
중업 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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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우리들이 존경하던 코르뷔제의 공방에서 일을 하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소.
기왕에도 형과 늘 얘기했지만 코르뷔제의 건축이나 정원에다 우리 이조자기를 놓고 보면 얼마나 어울리겠소. 코르뷔제의 예술이 새롭듯이 이조자기 역시 아직도 새롭거든. 우리의 고전에 속하는 공예가 아직도 현대미술의 전위에 설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크나큰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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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우연한 기회에 베르브의 마티스 작품집을 보지 않았겠소. 참 좋습디다. 눈이 번쩍 뜨이더군요. 80이 지난 그런 늙은이의 작품이 왜 그리 젊소. 마구 갈기고 짓이기고 했는데 어쩌면 그리 대담하고 하이칼라 할 수가 있겠소. 모처럼 좋은 화집을 보고 흥분도 했고 공부도 되었소. 형은 이러한 작품들을 원화原畫로 볼 수가 있으니 얼마나 행복하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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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5월 6일 밤
김환기 화가
김중업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앙리 마티스
[우영이형의 답장]
이런 반가운 스포라니요 ^^
이번주 건축학교는 [김중업 건축박물관]입니다. 르꼬르비지에에게 3년간 수업한 건축 어휘가 고스란히 담긴 건물입니다. 70년전 바다 건너 프랑스 어느 현장에서도 청춘들의 토론이 밤새 이어졌겠죠.
주말 아침, 김중업 선생의 말이 봄날의 하루를 채워드리지 않을까요?
김환기 화가의 애뜻함이 있을지도요.
" 건축가는 죽는날 까지 연륜을 쌓듯 벽돌을 한장 한장 쌓으며 자신의 자화상을 세워가는 겁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러 갑니다 ^^
그리고 4월 19일, 벚꽃이 아직 흩날리는 봄, 우리는 김중업 건축가가 60년대 지은 공장을, 박물관이 된 공간을 만나러 갔습니다 
[댄비의 사진들]
[아녜스의 후기]
그냥 이 일기를 나는 오늘의 결정적인 한 장면으로 정했다.
한국이 6.25 전쟁을 겪고 있을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간 그는 얼마나 부유하고 풍족한 환경 속에서 공부했을까,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환경은 자신이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삶의 지도는 매순간 나의 선택이 만드니까.
“꿈이 있고 시가 있고 사람들이 옹기종기 정다웁게 모여살고 싶은 공간.”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아, 비추어보면 (초기 작품이지만) 공장도 그런 마음을 담을 수 있구나, 이해가 되었다.
아마 건축학교의 안내를 따라오지 않았다면 이 평범하고 보잘것없어보이는 낮고 작은 건물을 나는 아마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벽에 하나씩 매달려 있는 계단 한줄, 갈비뼈가 밖으로 나와있는 구조체의 기둥, 내부 공간보다 더 거대한 옥상정원, 모든 곳이 사랑스러웠다.
하나씩 하나씩 홀씨가 되어 프랑스로부터 여기와서 떨어졌다니.
나는 건축은 모르지만 르꼬르뷔지에의 건축물을 많이 보았다. 그때 건축학교를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언젠가 건축학교에서 좀 더 멀리 공간을 탐험하고 느끼러 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시간의 기록을 담은 오늘 김중업 건축박물관은 역시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전한 메시지의 기록, 경험의 기록, 그래서 사람의 기록이었다. 그리고 그 기록은 김중업이라는 사람의 시선과 매개체를 통해, 그리고 그 공간을 느끼는 우리를 통해,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우영이형의 후기]
이번 건축학교 [김중업 박물관]의 결정적 장면을 위해 저는 아리누리님의 사진 한장을 슬쩍 가져오렵니다.
박물관을 처음 방문했을때 연구동의 뒷편에서 맞닥뜨린 계단실과의 조우가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가을이었고 바람이 불었고 곧 문을 닫을 저녁이었죠. 1959년 어느밤 김중업 선생의 책상위가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자욱한 담배연기의 새벽 두시가 말이죠.
외벽에 돌출되어 캔틸레버로 매달린 디딤판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공장 건물에 저런 디테일이라뇨. 아마 마스터플랜을 브리핑하던 날, 아무도 관심갖지 않았을 비상계단이었을테고 어쩌면 파일에도 올라와 있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연구동의 사람들은 허공에 떠 있는 디딤판을 밟으며 공간을 건너 휴식의 자리로 내려갔을테지요. 비상계단의 목적은 단 한가지입니다. 피난입니다. 하지만 건축가는 피난보다는 계단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건너가고자 했을 겁니다.
그렇게 계단실을 내려오면 건물 전체를 지탱하고 있는 구조체를 만나게 됩니다. 구조체가 만들어 놓은 회랑의 공간이죠. (고딕성당의 Flying Buttress와 같은 형식의)
아마 건축가는 하루종일 연구소에 갇혀 일하는 연구원들의 일상을 생각하며 디자인했겠죠. 그들에게 필요한 휴식의 공간을 구획된 방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계단을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건너가고 다시 그곳에서 외부도 내부도 아닌 회랑의 공간을 주고 싶었던건 아닐까요.
아리누리님의 결정적 사진 한컷은 지금껏 [김중업 건축 박물관]의 사진자료에서 보지 못했던 장면입니다.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그 누구도 저 장면을 보지 못했던 것일까요.
아리누리님의 시선이 바로 김중업 선생의 시선입니다. 새벽 두시 평면도를 바라보며 상상했던 건축가의 시선이죠.
[아리누리의 후기]
우영이형의 리뷰에 ..
언제부턴가 글쓰기를 망설이고 회피하고 있는 제가 하루를 망설이다가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
우영이 형의 전문적인 구조와 용어 설명을 들으며 ..
저의 머릿속은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느라 무척 바빴습니다 .. ㅋㅋ
밖으로 돌출된 구조체를 보고 지나며 감탄하고 .. 또, 조선시대 궁궐의 회랑을 떠올리며 구조체 기둥위에 투명 천장을 씌워도 보고 ..
모둥이를 돌아 캔틸레버 계단을 발견했을땐 ... 하늘을 바라보며 천국의 계단 같은 신비로움을 .. ㅎㅎ
그 계단위에 옥상정원까지 있다면 ...
그냥 지상낙원이겠구나 ... 까지...
토요일 .. 주차장에서 마주한 1평 타워부터 놀라움의 시작이었는데 ...
공장이라 들었던 건물의 입구에 있는 경비실은 충격이었습니다.
사각의 유리 창문을 가진 원형의 건물은 흡사 갓을 연상시키며 다른건물들이 오버랩되어 떠올라 흥미로웠는데 캔틸레버의 계단과 지하실까지, 거기에 앞쪽에 있는 분수는 놀라움의 연속이었고, 연구동으로 쓰였다는 박물관은 건물자체도 내부도 그저 감탄의 연속 ...
창을 통해 보이는 한그루의 나무는 건축가의 세심하게 계산된 배려와 사랑이 아니었을까 싶고 ..
마지막 본관은 언뜻 평범해보이는 벽돌건물에 유럽의 어느 성같은 외관의 디테일과 중정을 품은듯한 호텔같은 내부에 옥상정원까지 ...
르 코르뷔지에의 구조를
들으면서도 내맘대로 동서양의 건축양식이 조화롭게 어우러진듯 느껴져서 ...
오래전 그 시절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도 훌륭한 건축물을 바라보며 마냥 설레였습니다.
그 옛날.. 그 산속에.. 그런 건물이 지어졌다는게 마냥 신기하고 ...
벚꽃이 흐드러지게 만개하는 봄날에도,
초록으로 무성한 나무들과 안양천 계곡이 시원하게 맞아줄 여름날에도,
낙엽이 온 산을 화려하게 만들어줄 가을날에도,
흰눈이 하얗게 뒤덥혀 아름다울 그 멋진 공간에 ...
그렇게 시대를 앞서간 천재 건축가의 열정과 도전에 무한한 존경을...
그리고, 그 건축가를 품어주신 건축주에게 심심한 감사를 ...
마지막으로 그 모든걸 깨달아 느낄수있도록 이끌어주신 우영이형께 진심을 담아 ...
감사합니다 ~
그리고 .. 가장 소중한건 ...
그 순간, 그 시간 그 장소에 함께해준 꿀친들께 ~
사랑합니다 ~
>>
우영이형: '신은 디테일에 있다' 거장 미스 반 데어로에 Ludwig Mies Van der Rohe는 이 말로 건축의 완성을 이야기했죠. 건축을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선에도 꼭 새길만합니다.
건축을, 공간을 세세히 본다는게 쉽지 않고 게다가 그 시선을 글로 쓴다는건 더 어려운 일이죠.
애정이 저런거구나 새삼 놀랍고 반성합니다 ^^;;
하지만 말해 무엇하겠어요, 건축의 모든 디테일을 이미 단 한장의 사진에 담았는데 말이죠!
[우영이형의 두번째 리뷰 :)]
그냥 지나칠수가 없네요
아무래도 좀더 '디테일'하게 말하고 싶어서 다시 리뷰를 씁니다.
아리누리님 글중에 저는 두가지 이야기에 시선을 오래 두었답니다.
”밖으로 돌출된 구조체를 보고
구조체 기둥위에 투명 천장을 씌워도 보고 ..”
아리누리님은, 그곳에서 보낸 오후 한때의
연구원들을 생각했겠죠.
하지만 저도 투명천장까지의 상상은 하지 못했습니다.
리뷰를 읽으면서 그시절 그날 오후,
비내리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연구원의 담배 한모금은 얼마나 좋았을까요.
투둑투둑! 그날 투명천장에 쏟아지던 빗소리가 있었다면 말이죠.
[창을 통해 보이는 한그루의 나무는 건축가의 세심하게 계산된...]
설마 김중업건축가가 그랬겠어요?
모든 건축과 공간은 그곳에서 느끼는 모두의 것이라는게 이렇게 증명이 됩니다.
그날밤 건축가의 도면에 나무 한그루가 있건 없건 뭐가 중요하겠어요.
세월이 지나고 아리누리님이 느끼는 창문밖 초록이 더 중요하지요. 누군가는 창문의 분절된 프레임에 더 눈길이 가고 또 누군가는 창문 바닥에 새겨지는 햇살의 그림자에 감동할지도요.
아리누리님의 세세하고 따뜻한 시선이
김중업박물관에 한가득입니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공간을 경험하는 관찰자에게는 이런 뜻이었구나 생각되었습니다.